1649년 1월 30일 찰스1세의 처형 영국의 청교도 혁명의 배경
영국의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겨 존경을 받았던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자,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던 스코틀랜드의 왕이 그 뒤를 잇게 되는데, 그가 바로 제이슴 1세였다. 그리고 1625년 제임스 1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찰스1세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찰스 1세는 즉위하자 의회의 승인도 없이 세금을 마구잡이로 거두어 들었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감옥에 가두었으며, 국민들은 고달픈 삶을 살게 되고, 이런 분위기를 아랑곳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찰스 1세의 폭정에 의회는 1628년에 영국 역사상 유명한 문서가 된 '권리청원'을 왕에게 제출하였는데, 이 권리청원에서는 국왕은 절대 군주가 아니라는 것과 국왕이 세금을 마음대로 매기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국민을 체포하지 못하고 감옥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찰스 1세는 크게 화를 내고, 이듬해인 1629년 1월에 의회를 11년 동안이나 없애 버리게 된다.
하지만 돈이 필요해지자 다시 외회를 소집하게 되고 의원들은 찰스 1세를 비난했고, 왕이 의회를 없애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었다. 이에 찰스 1세는 군대를 시켜서 다시 의회를 없애 버리려고 했고, 의회도 군대를 모아 왕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처음의 전투는 왕에게 유리했지만 크롬웰이 청교도로 편성한 철기대의 활약 덕분에 의회파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의회는 1649년 1월 30일에 찰스 1세를 처형하게 되고, 의회는 다시 공화정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 사건을 바로 '영국의 청교도 혁명'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