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국민 회의_ 인도의 영국 식민지시대
영국의 식민지 지배하에 또다시 인도가 반란을 일으켰을때, 무굴 황제가 추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굴 황제를 미얀마로 옮기고 멸망시켰습니다. 또한 이미 무역독점권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인도 통치를 위한 행정기관과 같은 성격을 지녔던 영국 동인도회사를 해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1877년, 부수당의 수상이 디즈레일리는 빅토리아여왕을 황제로 하는 인도제국을 성립시킵니다.
영국은 인도에서 시파히 같은 용병뿐 아니라 관료에도 인도인을 기용하고 있었는데 인도의 온건한 부유층 자제들이 영국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법률을 공부하고 돌아와 인도제국의 하급관료로 기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 대학에서 공부한 인도 유학생은 영국의 법률이나 제도만을 공부한게 아니라 로크나 밀의 책고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현실과의 괴리를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영국에서 자신들이 공부한 것과 인도에서 영국긴이 행하고 있는 현실과의 차이를 깨달음으로써 민족주의운동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인도인의 불만을 더이상 방관할 수 많은 없어서 1885년에 인도국민회의를 결성했는데, 인도국민회의는 영국인 행정관 출신인 흄이 설립하였습니다. 처음 국민회의에 참가한 인도의 민족운동가는 온건하고 친영적이었는데 처음 결성했을 때의 그들의 요구가 인도인을 좀더 관료로 채용해 주고, 공무원시험을 런던이 아닌 인도에서 시행해 달라는 정도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이 인도에서 조금 잘못하고 있으므로, 학생 입장인 인도인이 영국에서 배운 영국의 잘못을 지적해주면 영국은 틀린없이 이를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시 국민회의의 지도자는 유학 경험이 있는 바네르지나 나오로지 같은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인도인의 불만을 배출할 수 있는 단순한 배출구로서 국민회의를 결성한 것이지, 애당초 그들의 의견이나 요구를 들어줄 마음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