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작품세계와 배경
149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나타난 독일인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경이롭고 화려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예술에 메혹되었는데요, 뒤러가 르네상스 정신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작품은 1498년에 그린 "26세의 자화상"입니다.
여기에서 뒤러는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을 통해 르네상스의 이상을 표현하려 하였는데, 그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할때 약간은 자만에 차있는 모습이며, 그당시 유행하는 의상을 멎지게 차려 입은 젋은이로 그렸습니다.
하지만 판화를 그릴 때는 이탈리아 양식을 덜 받아 들였는데, 1498년에 제작된 "계시록의 네 기사"에는 후기 고딕 양식의 요소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예견하고 있는 대환란을 그의 깊은 신앙심으로 표현하였으며, 전쟁과 재난, 죽음 등의 인간의 숙명적인 운명을 막을 길 없는 비참하고 참담한 상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501년에는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가장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는지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여기에 당시의 북구 유럽은 흑사병이 유행했기 때문에 알브레히트 뒤러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2년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병은 더욱 심해졌고 덕분에 우울증까지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귀족들은 그를 독일에서 가장 위대한 판화가라며 칭송하였고, 그의 작품을 인정하였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사의 영향으로 그려진 "아담과 이브"는 신비스러운 고전미의 이상을 담고 있는데,
신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아담과 이브는 절대미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원죄에 의한 파멸이 물질적인 육체에 다가서고 있음을 시사하고도 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는 "기사와 죽음과 악마"는 기독교적인 휴머니스트였던 그가 당시 북유럽 최대의 인문주의자였던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썼던 "기독교 군병 편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치 기마상 조각처럼 조화롭고 균형잡힌 자세를 보여주는 기사가 그를 유혹하는 죽음의 사신과 악마의 준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신앙심으로 무장한 채 위풍당당하게 전진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