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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세계사44

러시아의 11월혁명, 배경과 결과 구소련의 몰락 러시아의 11월혁명, 배경과 결과 구소련의 몰락 1917년 7월 사회혁명당의 우파였던 케렌스키가 임시정부의 수상이 되었습니다.하지만 9월에 코르닐로프라프라는 제정러시아의 장군이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이것을 진압하는 데 볼셰비키의 활약이 매우 컸는데요, 이 일로 민중의 지지를 얻게된볼셰비키는 11월 7일에 다시 혁명을 일으켜 케렌스키정부를 붕괴시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11월혁명인데 러시아력으로 친다면 10월혁명이 될 것입니다.다음날인 8일 러시아전체 소비에트회의에서 임시정부를 대신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고,'평화에 관한 포고'와 토지에 관한 포고가 발표되는데,,,'평화에 관한 포고'는 '무병합, 무배상, 민족자결'을 내세우며 전쟁 종결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사아혁명 직후에 참전.. 2018. 7. 12.
니힐리즘(nihilism) VS 테러리즘(terrorism) 간단비교 설명 니힐리즘(nihilism) VS 테러리즘(terrorism) 간단비교 설명 #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 기존의 가치관이라든지 권위를 모두 부정하는 입장을 말하는데요,독일 철학자인 야코비가 피히테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투르게네프가 소설 "아버지와 아들"에서'니힐리스트'라는 말을 쓰면서 널리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니체가 니힐리즘을 철학문제로 전개하였다고 합니다. # 테러리즘(terrorism) 비합법적인 폭력의 수단으로 정치적 적대자를 제거하는 행동을 말합니다.이것을 행하는 자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데, 혁명운동에 대해 반혁명 측이 행하는 것을 '백색테러', 이것에 대항하여혁명 측이 행하는 것을 '적색테러'라고 하기도 합니다. 2018. 7. 10.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만리장성 이야기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만리장성 이야기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을 이룬 진시황은 황제에 즉위하면서 사상의 통일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제자백가의 사상 가운데 법가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금하였는데요, 법가는 신분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엄격히 법을 적용하고 법에 따라 통치한다는 사상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면모를 지닌 정치철학이 되었습니다. 법가 사상의 창시자는 상앙이며 한비자, 이사가 대표적인 인물 입니다. 진시황은 이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제자백가의 저작들을 불살라 버리고, 이에 반대하는 수많은 학자를 생매장까지 하였다고 하는데요, 이것을 '분서갱유'라하며 이 사건은 '음풍농월하는 쓸대없는 사상을 단호히 배격한다' 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사상과 언론 탄압의 대표적.. 2018. 7. 5.
포에니 전쟁(Punic Wars) 지중해의 패권을 가르다 포에니 전쟁(Punic Wars) 지중해의 패권을 가르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에 지금의 아프리카 튀니스 근처에 세워진 도시 인데요, 페니키아 인이 지중해 연안에 세운 여러 식민 도시 가운데 하나닙니다. 카르카고와의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 부르는 이유는 당시 로마인이 사용한 라틴어로 페니키아를 포에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포에니 전쟁은 약 120년 동안 세 차례에 걸처 벌어졌는데, 제1차 전쟁은 기원전 264년에 시작되어 23년동안 지속되고 기원전 241년에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이때의 전쟁터는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있는 섬 시칠리아 였습니다. 이 당시 로마는 아직 농업국이었기 때문에 경제력이나 해군력이 카르타고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강하게 결속된 시민군 덕택에 용병과 피정복민으로.. 2018. 6. 24.
토테미즘과 애니미즘, 신석기시대의 신앙 토테미즘과 애니미즘, 신석기시대의 신앙 농사를 지으면서 신석기인들은 기후와 같은 자연의 섭리에 대해 더욱 민감해 졌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특히 태양의 소중함과 비의 필요성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생명이라는 문제를 더욱 깊이있게 생각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산이나 나무, 강에도 신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무덤을 만들기도 했는데 하지만 무덤이 오늘날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활터전 주변에 만들어 졌습니다.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이 같이 지낸다는 의미죠, 또한 사람을 묻을 때는 머리를 동쪽이나 남쪽으로 두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을 염두에 .. 2018. 6. 19.
인도 국민 회의_ 인도의 영국 식민지시대 인도 국민 회의_ 인도의 영국 식민지시대 영국의 식민지 지배하에 또다시 인도가 반란을 일으켰을때, 무굴 황제가 추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굴 황제를 미얀마로 옮기고 멸망시켰습니다. 또한 이미 무역독점권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인도 통치를 위한 행정기관과 같은 성격을 지녔던 영국 동인도회사를 해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1877년, 부수당의 수상이 디즈레일리는 빅토리아여왕을 황제로 하는 인도제국을 성립시킵니다. 영국은 인도에서 시파히 같은 용병뿐 아니라 관료에도 인도인을 기용하고 있었는데 인도의 온건한 부유층 자제들이 영국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법률을 공부하고 돌아와 인도제국의 하급관료로 기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 대학에서 공부한 인도 유학생은 영국의 법률이나 제도만을 공부한게 아니라 로크나 밀의 책고 읽고.. 2018.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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