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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작품세계와 배경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작품세계와 배경 149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나타난 독일인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경이롭고 화려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예술에 메혹되었는데요, 뒤러가 르네상스 정신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작품은 1498년에 그린 "26세의 자화상"입니다. 여기에서 뒤러는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을 통해 르네상스의 이상을 표현하려 하였는데, 그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할때 약간은 자만에 차있는 모습이며, 그당시 유행하는 의상을 멎지게 차려 입은 젋은이로 그렸습니다. 하지만 판화를 그릴 때는 이탈리아 양식을 덜 받아 들였는데, 1498년에 제작된 "계시록의 네 기사"에는 후기 고딕 양식의 요소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요한계시록이 .. 2018. 7. 6.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만리장성 이야기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만리장성 이야기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을 이룬 진시황은 황제에 즉위하면서 사상의 통일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제자백가의 사상 가운데 법가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금하였는데요, 법가는 신분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엄격히 법을 적용하고 법에 따라 통치한다는 사상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면모를 지닌 정치철학이 되었습니다. 법가 사상의 창시자는 상앙이며 한비자, 이사가 대표적인 인물 입니다. 진시황은 이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제자백가의 저작들을 불살라 버리고, 이에 반대하는 수많은 학자를 생매장까지 하였다고 하는데요, 이것을 '분서갱유'라하며 이 사건은 '음풍농월하는 쓸대없는 사상을 단호히 배격한다' 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사상과 언론 탄압의 대표적.. 2018. 7. 5.
파의 성분과 특성, 손질과 보관법(대파, 쪽파, 실파, 움파) 파의 성분과 특성, 손질과 보관법(대파, 쪽파, 실파, 움파) 파의 주산지는 중국이며,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고 있습니다. 열대지방에서는 잎아가, 한대지방에서는 줄기파가 주로 재배되며, 온대지방에서는 겸용종이 재배됩니다. 진도, 부산, 대구, 아산, 남양주 등이 대표적인 주산지 입니다. 파의 성분과 특성 파의 자극 성분은 이황화아릴로 살균, 살충의 효력이 있는데요, 파의 최루성 향기성분인 알린은 체내에 흡수되어 비타민B1의 이용을 도와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1. 대파의 특성 # 중생종은 흰부분의 굵기가 2.5~3.0cm, 중량 250~330g으로 잎이 부드러우며 탄력이 있습니다. # 만생종은 중생종보다 흰부분이 굵고 긴 특징이 있습니다. 2. 쪽파의 특성 # 조생종은 둥.. 2018. 6. 29.
포에니 전쟁(Punic Wars) 지중해의 패권을 가르다 포에니 전쟁(Punic Wars) 지중해의 패권을 가르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에 지금의 아프리카 튀니스 근처에 세워진 도시 인데요, 페니키아 인이 지중해 연안에 세운 여러 식민 도시 가운데 하나닙니다. 카르카고와의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 부르는 이유는 당시 로마인이 사용한 라틴어로 페니키아를 포에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포에니 전쟁은 약 120년 동안 세 차례에 걸처 벌어졌는데, 제1차 전쟁은 기원전 264년에 시작되어 23년동안 지속되고 기원전 241년에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이때의 전쟁터는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있는 섬 시칠리아 였습니다. 이 당시 로마는 아직 농업국이었기 때문에 경제력이나 해군력이 카르타고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강하게 결속된 시민군 덕택에 용병과 피정복민으로.. 2018. 6. 24.
토테미즘과 애니미즘, 신석기시대의 신앙 토테미즘과 애니미즘, 신석기시대의 신앙 농사를 지으면서 신석기인들은 기후와 같은 자연의 섭리에 대해 더욱 민감해 졌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특히 태양의 소중함과 비의 필요성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생명이라는 문제를 더욱 깊이있게 생각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산이나 나무, 강에도 신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무덤을 만들기도 했는데 하지만 무덤이 오늘날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활터전 주변에 만들어 졌습니다.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이 같이 지낸다는 의미죠, 또한 사람을 묻을 때는 머리를 동쪽이나 남쪽으로 두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을 염두에 .. 2018. 6. 19.
인도 국민 회의_ 인도의 영국 식민지시대 인도 국민 회의_ 인도의 영국 식민지시대 영국의 식민지 지배하에 또다시 인도가 반란을 일으켰을때, 무굴 황제가 추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굴 황제를 미얀마로 옮기고 멸망시켰습니다. 또한 이미 무역독점권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인도 통치를 위한 행정기관과 같은 성격을 지녔던 영국 동인도회사를 해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1877년, 부수당의 수상이 디즈레일리는 빅토리아여왕을 황제로 하는 인도제국을 성립시킵니다. 영국은 인도에서 시파히 같은 용병뿐 아니라 관료에도 인도인을 기용하고 있었는데 인도의 온건한 부유층 자제들이 영국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법률을 공부하고 돌아와 인도제국의 하급관료로 기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 대학에서 공부한 인도 유학생은 영국의 법률이나 제도만을 공부한게 아니라 로크나 밀의 책고 읽고.. 2018.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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