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의 배경(얄타회담)과 김일성(본명 김성주)주석 VS 이승만 초대 대통령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중인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처칠, 그리고 장제스는 조선의 독립을 결정하고 1945년 얄타회담에서 이것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얄타회담에서의 결정을 근거로 하여 소련은 8월8일에 소련-일본중립조약을 파기하고 대일본전에 참전하여 한반도로 남하하게 됩니다.
당황한 미국이 북위 38도선에 의한 남북분할을 제안하여 합의가 성립되는데, 당시 이 분단은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좌우가 대립하였고, 모스크바에서 열린 연합국외무장관회담에서 미국, 영국, 소련, 중국등 4개국에 의한 신탁통치가 결정이 되자 이에 대한 찬반을 놓고 좌우의 대립은 더욱 극심해 졌습니다.
결국 1948년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쪽에는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습니다.
김일성(본명 김성주)은 북측의 수상이 되었는데 1972년에는 주석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는 결국 이승만이 선출되었습니다.
김일성 ( 본명 김성주 : 1912~1994 )
중국 동북부에서 항일 운동에 참가하였고 소련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일본이 패배하자 소련군 대위로 귀국하였다.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수상이 되었고, 1972년 이후에는 공화국 주석이 되었다.
오랜기간 조선노동당과 정부의 주도권을 자신에게만 집중시키는 유일체제를 고수했다.
이승만 ( 1875~1965 )
조선왕조 말기 독립협회 운동에 참가하다 투옥되었다.
석방 후 미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선언이후 귀국하여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1948~1960)이 되었다.
장기 집권을 계속해 1960년 선거에서 4선에 올랐지만 4.19혁명으로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