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간(李芳幹)의 제2차 왕자의 난, 1400년 1월의 조선
1400년 1월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이성계의 4남 이방간(李芳幹)이 일으킨 난이 "제2차 왕자의 난" 입니다.
이방간(李芳幹)은 같이 난을 일으켰던 이방원이 모든 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자신은 별 볼일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불만에 차 있던중, 이방원이 방간(芳幹)을 치려 한다는 박포의 말을 듣고 방원(芳遠)을 제거하러 나서게 됩니다.
같은 형제끼리 다시 피의 다툼이 벌어진 것이죠
원래 방간(芳幹)은 무식하고 어리석은데다 다혈질이라 이성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모자랐다고 합니다.
능력면에서도 방원(芳遠)이가 훨씬 웃길인데도, 형인 자기가 세제가 되지 못하고 동생인 방원이 세제가 되자 주제파악도 못하고 일을 꾸민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지중추원사 박포는 제1차 왕자의 난때 사병을 동원하여 방원(芳遠)을 도운 무장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방원(芳遠)의 승리에 결정적인 공훈을 세웠다고 믿고 있었는데 논공행상에서 2등이 되었습니다.
이것에 불만을 가진 박포는 불평을 늘어놓았고, 공신들의 분열을 우려한 방원(芳遠)은 박포를 잠깐 귀양보냈었습니다.
이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박포가 방간(芳幹)을 부추겨 난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밀정을 심어놓고 방간(芳幹)의 행동을 체크하던 방원(芳遠)은 재빨리 군사를 정비하여 방간과 맞섰고, 이숙번이 쏜 화살에 방간(芳幹)의 아들 이성기가 말에서 떨어지자 대세는 굳어지게 되고,,
결국 패한 방간(芳幹)은 도망가다가 체포되어 토산으로 유배되었고,
그 일당은 모조리 처형되었습니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쳐 형제들을 주륙한 방원(芳遠)이 태종(3대)으로 즉위하면서 바야흐로 공신들의 풍년시대가 되었으니, 이는 태종이 무자비한 숙청을 감행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